건축폐기물리사이클

지역 목수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나는 자재 – 폐건축자재를 예술로 바꾼 스타트업 이야기

ej9999 2025. 7. 22. 23:55

목수와 스타트업, 예기치 않은 만남이 만든 순환의 기회

건축과 인테리어 현장에서 매일같이 쏟아지는 폐자재들.
그중 상당수는 견고한 원목, 질 좋은 철제 구조물, 독특한 무늬의 타일 등 여전히 활용 가치가 높은 재료들입니다.
하지만 구조적 또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탓에
이러한 자재는 그대로 폐기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아쉬워한 몇몇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이제는 전국 각지의 지역 목수들과 협업하여 자재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특히, 폐건축자재의 디자인적 가능성과 지역 수공업의 섬세함을 연결한 시도는
산업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사업 모델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역 기반으로 활동 중인 스타트업 ‘소재공방(가칭)’의 운영 사례를 중심으로,
지역 장인과 스타트업이 어떻게 협업하며,
폐자재를 어떤 방식으로 상품화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폐건축자재

 

 

지역 목수와의 협업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소재공방’의 시작은 매우 단순했습니다.
서울에서 공간 디자이너로 일하던 두 명의 창업자는
철거 예정인 건물에서 고재(古材)로 남은 나무문, 원목 프레임, 철제 손잡이 등을 보고
“이걸 그냥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자재들을 가공하고 상품화하려 하자
가장 큰 문제는 공정 처리 인프라의 부재였습니다.

이들은 서울 근교가 아닌 강원도 홍천, 전북 진안, 충북 제천 등의 지역 목수들과 접촉하기 시작했고,
오랜 경험을 가진 수공예 목수들은
“이런 자재가 오히려 요즘 나무보다 더 튼튼하다”며 흥미를 보였습니다.
스타트업은 자재를 수거하고, 목수는 이를 가공하고,
다시 스타트업이 브랜딩과 판매를 맡는 방식으로 단순하고 명확한 협업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협업은 생각보다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현재는 정기적으로 자재를 모으고, 목수의 작업실로 운송하며, 완제품을 서울로 회수해 판매하는
풀라인 생산 체계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목수에게는 안정적인 일감을 제공하고,
스타트업에게는 고품질의 ‘핸드메이드 리사이클 제품’을 확보하는 상생의 구조로 자리 잡았습니다.

 

어떤 제품이 만들어지고 어떻게 팔리고 있을까?

‘소재공방’이 처음으로 출시한 제품은
폐목재로 만든 수납 벤치와 테이블, 그리고 벽걸이 선반이었습니다.
자재 자체에 이미 세월의 흔적이 깃들어 있었기에
별다른 가공 없이 샌딩, 오일 마감, 간단한 철물 보강만으로도 고급스러운 빈티지 제품이 완성되었습니다.

이후에는 철제 난간과 창문 프레임을 재가공해 만든
실내조명 프레임, 스탠딩 미러, 키친 랙 등도 출시되었고,
고재 특유의 질감을 살려 만든 소형 데스크, 독서대, 캔들 받침대 등은
SNS와 온라인 편집숍을 통해 빠르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판매 방식도 단순한 상품 판매에 그치지 않습니다.
각 제품에는 ‘이 자재는 어느 지역 어떤 건물에서 회수되었는지’를 설명한 태그가 붙어 있으며,
해당 자재의 이전 용도나 건축 연대 등이 제품 스토리로 연결됩니다.
예를 들어 “1995년 서울 연희동 주택에서 철거된 원목 창틀로 제작한 조명 프레임”과 같은 설명은
소비자에게 감성적이고 윤리적인 만족감을 동시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폐자재를 다루는 것,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폐건축자재를 제품으로 활용하는 데는 여러 가지 실질적인 어려움이 따릅니다.
첫째는 자재의 품질과 상태 편차입니다.
같은 원목이라도 습기, 곰팡이, 균열 정도가 다르고,
철제 부품도 부식 상태나 규격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가공 전 선별 작업에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둘째는 가공 도구와 기술의 적합성 문제입니다.
일반적인 가구 자재와 달리 폐자재는 이미 못이 박혀 있거나, 접합 흔적이 있어
목공 기계에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경험 많은 수공예 장인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셋째는 물류와 보관입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회수된 자재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송하고,
작업 전까지 안전하게 보관할 것인지가 사업 운영의 핵심 중 하나가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스타트업 혼자 감당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소재공방’은 지역 창작공방과 협약을 체결하고
자재 보관, 1차 가공, 현장 검수 등을 분담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협력 체계는 지역 기반 수공예 생태계를 활성화시키는 순환 구조로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지역 기술자와 도시 자원의 연결이 열쇠입니다

‘소재공방’의 사례는 단순한 업사이클 제품 제작을 넘어
지역 기술자와 도시 폐자재를 연결해 지속가능한 순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구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나온 자재가 다시 지역에서 가공되고,
디자인과 감성을 더해 다시 도시 소비자에게 돌아오는 이 흐름은
자원뿐 아니라 기술과 사람도 순환되는 생태계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지역 목수와의 협업은
고령화와 일거리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전통 수공업자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브랜드 차별화와 제품의 고유성 확보라는 효과를 가져다줍니다.

앞으로 이 같은 구조가 더 많은 지역으로 확산된다면,
도시는 자원을 버리는 곳이 아니라 다시 쓰기 위한 자원의 창고로,
지역은 다시 살아나는 기술과 작업의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작은 나무 조각 하나에서 시작된 이 변화가
우리 사회의 순환 건축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