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에서부터 자재 회수를 고민하는 시대입니다
건축은 오랜 시간 동안 “짓는 것”에 초점을 맞춘 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대를 지나며, 지속가능성과 환경적 책임이 중시되면서
이제는 건축물의 해체 이후를 설계 단계에서부터 고려하는 ‘순환 건축’ 개념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건물이 철거되는 순간 대부분의 자재는 폐기물로 분류되었고,
설계 역시 ‘해체’와 ‘자재 회수’는 후속 과정에서 고민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순환경제 개념이 건축에 접목되기 시작하면서
설계 도면, 자재 선택, 시공 방식 자체를 자재 재사용과 재배치를 고려해 구성하는 접근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에서는 2010년대 중반부터
“디자인 포 디스어셈블리(Design for Disassembly)” 개념이 등장하여
모듈형 구조, 비접착 시공, 조립식 시스템 등을 활용한
자재 회수 중심 설계 방식이 하나의 설계 철학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국내에서 해당 개념을 적용해
설계 단계부터 자재 회수 가능성을 고려하고
실제 시공과 운영에서 순환성을 실현한
서울의 친환경 건축 프로젝트 ‘리모듈하우스(Remodule House)’ 사례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전략과 시사점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자재 회수를 고려한 순환건축 설계부터 해체까지 고려한 ‘리모듈하우스’ 프로젝트
‘리모듈하우스(Remodule House)’는 2024년 서울 은평구에 시범적으로 조성된
친환경 순환 건축 시범주택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서울시 녹색건축지원단과 건축 스타트업 ‘에코스트럭처(Ecostructure)’가
공동으로 기획하였으며,
설계 단계에서부터 자재 회수 가능성과 구조 분해 용이성을 전면에 내세운 점이 특징입니다.
총 120㎡ 규모의 단층형 주택으로 구성된 리모듈하우스는
목구조 기반의 조립식 모듈 건축으로 설계되었으며,
외장재, 내장재, 창호, 바닥재 등 대부분의 자재가
비접착 방식(볼트, 클립, 마찰 고정 등)으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 방식은 건축물이 해체될 경우,
각 부위별 자재를 손상 없이 분리해 재사용이 가능한 상태로 회수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특히 설계 도면에는 자재별 해체 경로와 예상 분리 순서가 포함되어 있으며,
건축 완료 후에는 자재 여권(Material Passport)이라는 이름의 디지털 문서가 제작되었습니다.
이 여권에는 자재의 제조사, 시공 방식, 내구성, 분해 난이도, 수명주기 등이 기록돼
향후 리모델링이나 철거 시 디지털 기반 회수 전략 수립이 가능하도록 구조화돼 있습니다.
해당 프로젝트는 시공 이후 실제 해체 테스트도 진행됐으며,
외장재 패널과 일부 바닥재, 내부 칸막이 목재 등은
테스트 후에도 85% 이상 재사용 가능한 상태로 회수되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자재 회수를 고려한 순환건축 설계, 자재 선택, 시공 관리까지 일관된 회수 전략
리모듈하우스 프로젝트는 자재 회수를 고려한 설계를 실현하기 위해
단순히 도면만 수정한 것이 아니라,
건축 전 과정에 걸쳐 회수 전략이 반영된 운영 체계를 수립하였습니다.
첫째, 자재 선정 단계에서는
내구성과 재사용성이 높은 자재를 우선 선택하였습니다.
특히 구조재와 마감재의 경우,
국산 목재 중 ‘해체 후 형태 보존율이 높은 제품군’으로 사전 테스트를 진행한 뒤 적용했으며,
바닥재와 창호는 재시공 시 변형이 적은 마찰형 고정방식 제품을 도입했습니다.
둘째, 시공 방식은 비접착, 비용접 구조를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이를 위해 현장 시공 인력에게 별도 교육을 실시했고,
볼트 체결부에는 QR 라벨을 부착해
각 자재의 해체 순서를 시각적으로 안내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하였습니다.
이러한 시공 전략은 자재 분리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건축물의 유지보수 편의성도 함께 향상시켰습니다.
셋째, 건축 후 관리단계에서는
디지털 자재 여권 DB를 운영하여
건물 사용자가 자재 정보를 쉽게 조회할 수 있게 했고,
서울시와 협력해 향후 철거 또는 리모델링 시
자재 회수 지원 서비스와 연동될 수 있도록 준비 중입니다.
이처럼 설계에서부터 시공, 유지 관리까지
일관되게 자재 회수 전략을 반영한 사례는
국내 건축 실무에서 매우 이례적이며,
순환건축이 구호가 아닌 실현 가능한 모델이라는 점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시사점과 확장 가능성 – 자재 회수를 고려한 순환건축 설계가 순환경제를 만든다
리모듈하우스 사례는 자재 회수를 고려한 설계가
단지 친환경적 구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 가능한 도시 건축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모델입니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설계 단계에서 자재 해체와 분리 가능성을 미리 고려함으로써,
건축물의 전체 생애주기(Life Cycle)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자재 여권 시스템을 통해 자원의 투명성과 정보 접근성을 강화함으로써,
향후 건축 자재 시장의 디지털화와 순환 유통 구조 형성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모듈형 조립식 구조를 채택함으로써 건축비용 절감, 유지보수 용이성, 공기 단축 등의
추가적인 경제적 장점도 함께 실현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해당 사례는
지자체, 스타트업, 건축 전문가가 협력하여 순환경제 기반 건축을 실행한 통합형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다른 지역 및 공공 건축 프로젝트에도 확산 가능한 구조를 제시합니다.
앞으로는 공공기관 발주 건축물, 학교, 임대주택, 마을 커뮤니티 센터 등
다양한 시설에 이 같은 설계 철학을 적용함으로써
순환 자재 활용률을 높이고, 탄소배출을 줄이며,
장기적으로는 지역의 자원관리 시스템까지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순환건축은 건축 이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설계 도면을 그리는 순간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리모듈하우스와 같은 사례를 통해
현실 속에서 점점 실현 가능성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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