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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폐기물리사이클

버려진 자재에 가치를 더하다 – 폐건축자재 유통 플랫폼을 만든 스타트업 이야기

폐자재, 플랫폼을 만나 ‘시장’이 되었습니다

건축 현장에서 매일같이 수많은 자재들이 철거되거나 남겨지고 있습니다.
해체된 콘크리트 블록, 사용되지 않은 목재, 교체된 유리창, 남은 타일이나 철재 구조물 등은
그 자체로 충분히 사용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매립되거나 폐기물로 처리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동안 폐건축자재는 재사용을 위한 유통 구조가 부재하여
일반 소비자는 물론, 건축사와 시공사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자원으로 여겨졌습니다.
‘중고 자재’라고 하면 품질 불안, 규격 미달, 보관 환경 불량 등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이를 유통하려는 시도조차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러한 인식을 완전히 뒤집은 스타트업이 등장하면서
폐건축자재가 단순한 ‘잔재’가 아니라 재판매 가능한 자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스타트업은 자재를 온라인에서 투명하게 검색하고, 상태 정보를 확인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거래할 수 있도록 설계된 ‘폐건축자재 유통 플랫폼’을 구축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실제로 이 플랫폼을 기획하고 운영한
국내 한 스타트업의 창업 배경, 비즈니스 모델, 시스템 구조, 사회적 반향 등을
사례 중심으로 상세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 스타트업의 이야기를 통해, 지속가능한 건축이 기술과 만나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폐건축자재 유통

 

폐건축자재 창업 배경과 플랫폼의 탄생 – 건축 현장의 문제를 디지털로 풀다

이 스타트업은 2022년 서울 강서구에서 창업한 ‘리콘베이스’라는 기업입니다.
리콘베이스의 창업자 A대표는 건축 설계사무소와 시공사를 거친 뒤
공공 리모델링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건축 해체 자재들이 정리 없이 폐기되는 모습에 깊은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건축 현장에서 나온 자재 중에는
‘아직 쓸 수 있는 것들’이 많았고,
심지어 미사용 새 자재들이 발주 과잉이나 규격 오류로 인해 그대로 버려지는 경우도 자주 있었기 때문에
"이 자재들을 필요한 사람과 연결해 주는 구조가 왜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리콘베이스의 플랫폼 아이디어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우선 철거 업체, 해체 감리사, 자재 유통업자 등 다양한 현장 종사자들과 인터뷰하며
폐자재가 현장에서 폐기물로 바뀌는 흐름과 이유를 분석하였습니다.
그 결과, 재사용 가능 자재가 재유통되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현장에서 자재의 상태와 수량이 실시간으로 파악되지 않음

자재를 촬영, 분류, 가격 산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림

거래할 수 있는 온라인 시스템이나 시장이 부재함

폐기물 운반업체가 중간에 수익을 얻기 어려운 구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리콘베이스는
다음과 같은 기능을 갖춘 건축자재 유통 플랫폼 ‘ReMatar’를 개발하였습니다

 

모바일 기반 자재 등록 시스템
– 철거나 리모델링 현장에서 사진 3장, 치수, 상태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품목 분류와 추천 가격이 설정됨

 

AI 이미지 분석 기반 등급 평가 기능
– 자재의 마모도, 손상 상태, 사용 연식 등을
머신러닝으로 분석하여 신뢰도 높은 등급 부여

 

자재 수요자 매칭 알고리즘
– 인근 지역 설계사, 인테리어 업자, 공공기관 자재 담당자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수요 기반 매칭 구조

 

물류 연계 및 보관 창고 협업 모델
– 자재 거래가 성사되면 제휴된 운송업체와 보관 창고에서
운반 및 임시 적재를 맡아주는 ‘물류 일괄 연계 구조’

 

이 시스템은 단순한 중고 거래 플랫폼을 넘어
폐자재의 상태를 ‘디지털 자산화’하여 투명하고 신뢰 가능한 시장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폐건축자재 사업 확장과 사회적 파급력 – 지속가능성을 설계하는 구조 

리콘베이스는 2023년 말부터 서울시 공공건축 리모델링 사업에 참여하면서
자사의 플랫폼을 본격적으로 현장에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강동구의 한 구청사 철거 현장에서 나온 폐목재 3톤과 콘크리트 블록 약 5,000장
ReMatar를 통해 등급 분류·사진 등록된 뒤,
도봉구의 도시재생 홍보관과 민간 인테리어 업체에 매각된 사례는
공공 현장에서의 자원순환 실현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적 모델로 평가받았습니다.

또한, 리콘베이스는 플랫폼 이용자에게 자재 이력 정보, 탄소 절감량, 사용 인증서까지 제공하여
디자인 사무소나 건축주가
재사용 자재의 환경적 효과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성했습니다.
이는 향후 ESG 건축 평가 지표로 연동될 수 있는 구조로도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리콘베이스는 단순히 거래만을 중개하는 것이 아니라,
재사용 설계 컨설팅, 잔재 보관소 구축, 지역 단체와의 협력 워크숍
사회적 확장을 고려한 비즈니스 모델을 지속적으로 실험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5년부터는 다음과 같은 사업도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자재 이력 QR코드 시스템:
각 자재에 부착된 QR코드를 스캔하면
출처, 사용 이력, 재사용 횟수, 환경 성적표 등을 볼 수 있음

 

순환 자재 인증 마크 ReGrade 개발:
재사용 자재임을 인증해주는 자체 마크로,
향후 조달청 친환경 인증 연계 추진 중

 

소셜 디자인 연계 프로그램:
예술가, 건축학도, 디자이너들이 플랫폼에서 등록된 자재를 활용해
전시 및 상품 개발에 참여하는 시민 참여형 실험

 

이러한 활동은 자재 순환의 실용성뿐 아니라
디자인적, 문화적 가치까지 더한 순환경제 사례로 인정받으며
2024년 서울디자인어워드 친환경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의 과제와 가능성 – 플랫폼이 바꾸는 건축 자재 생태계

리콘베이스와 같은 폐건축자재 플랫폼 스타트업의 등장은
건축 산업 전반에 여러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건설 후 자재의 흐름이 관리되지 않았던 반면,
이제는 자재의 라이프사이클 전체가 디지털화되고, 공유되고, 재사용될 수 있는 구조가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이 흐름을 확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현실적인 과제도 존재합니다.

첫째는 재사용 자재에 대한 공식 규격과 품질 기준 부재입니다.
아직까지 국내 건축법과 조달 기준에는
‘재사용 자재’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안전성 기준이 부족해
공공 설계에 반영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KS 인증과 유사한 ‘재생자재 기준 프레임’이 마련되어야
플랫폼 내 거래 자재가 더 넓은 시장으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지역 내 물류망과 창고 인프라 부족입니다.
많은 폐자재가 물류비용 부담으로 인해
거래되기보다 현장에서 그대로 폐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자체 단위의 순환 자재 센터 및 공공 창고 도입이 필요합니다.

셋째는 건축사와 시공사의 인식 개선입니다.
여전히 일부 현장에서는 재사용 자재에 대한
‘품질 불신’과 ‘디자인 제약’ 우려가 존재하기 때문에,
플랫폼은 단순 거래를 넘어서
‘디자인 가능성과 환경적 이점’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갖춰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과제를 넘어선다면,
폐건축자재 플랫폼은 단순한 자재 거래 서비스가 아닌
건축 산업의 환경적 전환을 이끄는 핵심 인프라가 될 수 있습니다.
디지털 기반의 순환 자재 유통은 앞으로 도시의 해체와 재생,
그리고 지속가능한 건축 전략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